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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O V E/도움되는 글귀

남보원


경계를 넘어서 2010/02/23 18:54 이프
 

막장드라마가 나오는 까닭은 오늘날 사람관계가 막장이기 때문이듯 대중매체는 언제나 그 시대를 담아냅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리고자 더듬이를 세우죠. 그래야 공감을 자아내며 인기를 끌 수 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는 한국사회에 흐르고 있는 남자들의 속내를 잘 보여줍니다.



▲ 개그콘서트에서 큰 바람을 일으킨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남보원에 나오는 개그맨들이 흐느끼며 억울해하는 만큼 남녀의 권력관계가 달라졌음을 읽어낼 수 있죠. 여태까지 남자에게 여자는 불만을 털어놓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란 대로 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여자의 도리’를 알려주었던 대상이었을 뿐이었죠. 그런 여자들에게 이젠 남자들이 빨간 끈을 머리에 두르고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겁니다.



남보원이 목 놓아 투덜거리고 있는 건 그만큼 여자들의 힘이 세졌다는 갓대



갈마(역사)를 보면, 보다 더 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를 내게 되어있습니다. 권력은 듣는 사람에게 있다는 거죠. 자본가는 촛불을 들지 않습니다. 일부일처제에서 ‘여편’이 바가지를 긁는 건 ‘남편’에게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에게 힘이 있다면 바가지를 긁지 않겠죠. 남자는 벌써 여자에게 맞추었을 테니까요. 남자들이 여자에게 투덜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여자들의 힘이 세졌으며 남자 마음대로 여자를 할 수 없다는 갓대(증거)입니다. 그렇기에 남보원은 으름장을 내놓는 게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주장’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남보원이 바라는  대로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이 오려면 우선, 한국사회에서 밥 먹는 문화를 짚어봐야 합니다. 한국만큼 누군가와 같이 밥 먹는 일에 깊은 뜻이 스며있고 해야할 몫이 정해진 데도 없으니까요. 요즘엔 샤브샤브집에서 홀로 먹는 여자도 있지만 혼자 먹는 건 죽기보다 싫다며 차라리 굶는 여자들이 있을 정도로 밥은 단순하게 먹거리를 몸에 넣는 일이 아니라 ‘문화의식’이며 ‘권력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의례’입니다.



한국문화에선 밥을 먹고 똑같이 돈을 내기보단 힘 있는 사람이 밥을 사게 되어있어요. 위계질서가 딱딱하게 굳어진 한국사회에서 밥을 먹을 때면 아랫사람들은 돈 낼 생각을 아예 하지 않죠. 왜? 그렇게 정해져있으니까요. 어련히 윗사람이 냅니다. 밥값을 낼 때, 아랫사람이 내겠다고 하거나, 부장님 더치페이해요! 이랬다간 윗사람의 경제사정을 헤아려주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윗사람을 낮잡는 ‘싸가지 없는 놈/년’이 되죠. 또,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추렴하자고 했다간 뒤에서 수군거림 당하게 됩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정해진 역할극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밥을 사지 않는 건 여자가 남자보다 아랫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돈줄이 남자에게 있었던 한국에서 여자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건 남자로서 부끄러운 짓이었죠. 울며 겨자 먹기로 남자는 돈을 다 내면서 괜찮다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야 했고, 여자는 불편함을 가지면서도 얻어먹는 데 익숙해졌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 왔고, 이러한 역할극이 더 이상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되었기에 불만이 솟구쳐 오른 거죠.



마음에 안 든다면 바꿔야 하겠죠. 문화란 만들어나가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봐요. 여자에게 내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거예요. 나중에 돌아서서 끙끙 앓는 것보단 그게 훨씬 더 낫잖아요. 여자들도 자기가 내겠다고 먼저 말을 하고 계산서를 집어 드는 겁니다. 이런 남녀가 늘어나면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은 금방 옵니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게 일찍 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우습게 볼까봐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여자들은 괜히 말을 꺼냈다가 남자 자존심 무시하는 게 될까봐 입을 못 열죠. 그렇게 계산대 앞에서 짧은 숨죽임이 일어나고, 그 팽팽한 빈흘(공기)을 가르며 남자는 지갑을 열고, 여자는 잘 먹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쭈빗(긴장)은 누그러지죠.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이 오려면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서 벗어나야



▲ 데이트에선 역할극에 따라 남자는 남자역할, 여자는 역자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떨쳐내지 않으면 여자가 밥을 사지 못 한다는 거예요. 남자다움은 ‘능력’ 있게 여자를 지켜주는 것이고, 여자는 얌전하게 남자를 따라야한다는 역할극이 남자와 여자의 움직임을 꽁꽁 얽어매고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여자에게 밥을 사라고 했다간 ‘이상한 남자’가 되고, 여자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간 ‘이상한 여자’가 되는데, 누가 감히!



이런 끈덕진 ‘인상그물’에 사람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요즘엔 많이 헐거워졌죠. 먹은 대로 반반씩 내는 건 좀 너무 하는 거 같으니 여자가 먼저 밥을 사지 않을 지라도 그 다음을 내는 게 ‘에티켓’으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1차, 2차, 3차, 몽땅 남자가 내야 하는 데이트문화가 물러나고 있죠. 서로 좋아서 만나는 거라면 경제형편을 헤아리면서 더불어 내는 ‘합리성’이 돋아난 겁니다. 그만큼 여자들에게도 경제능력이 생겨났고요.



그럼에도 남자가 내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남자가 비싼 걸 사줄 때 ‘사랑받는 느낌’이라는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남아있듯 이런 여자들도 사라지지 않은 거죠. 구시대는 쉽게 저물지 않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정치사회뿐 아니라 데이트 문화에도 있는 것이죠. 생각은 선뜻 바뀌는 게 아니고, 구조대로 의식이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요.



생각 있는 남자라면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남자들을 뜯어먹으려 하는 ‘무개념녀’를 안 만나면 됩니다. 간 쓸개 다 떼어주고 훗날 징징대는 건 마초에게 휘둘리다가 질질 짜는 여자들과 별 반 다를 게 없으니까요. 온골엔 마초만 있는 게 아니라 여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남자들이 있듯 남자를 사랑하는 만큼 더 퍼주려는 여자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남보원의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되 한 발 더 나아가서 남자들에게도 외쳐야 합니다. 자기가 ‘무개념녀’를 만나놓고 왜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자신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 거죠. 데이트 문화가 달라지려면 여자들이 변해야 하는 만큼 남자들도 변해야 하니까요. 곁들여 지금까지 여자들이 돈 낼 형편이 아니었으며 남녀관계가 불평등했다는 점도 새삼 짚어봤으면 하네요. 지난날을 알아야 내일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남자들이 우둘거릴 정도로 남성권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죠. 그러나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남자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헉헉댈 게 아니라 여자와 마음을 맞대게 되었으니까요. 여자에게 넘긴 만큼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여자들을 위하고, 여자도 똑같이 떨짐(책임)지려는 자세로 남자들을 위했으면 합니다. 서로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면서 짜릿하게 데이트할 때, 남보원은 끝나겠죠. 그날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