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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일상/소박한 일상

42년 된 목욕탕, 78세 의사...동네서 향기가 난다


42년 된 목욕탕, 78세 의사...동네서 향기가 난다
[서평] 영화 칼럼니스트 옥선희가 쓴 <북촌 탐닉>
09.11.25 10:36 ㅣ최종 업데이트 09.11.25 10:36 김대홍 (bugulbugul)

2001년 주택산업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서울 공동주택 가운데 93%가 24년 이내에 철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기준 전국 공동주택 가운데 21년을 넘긴 주택은 고작 4%. 쉽게 부수고 쉽게 세우는 대한민국에서 오래된 집, 세월이 곱게 내려앉은 동네는 보기 힘들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나라는 죄다 새집들만 넘쳐날 것이다.

 

그래서일 게다. 북촌을 찾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의도 면적(80만 평)의 4분의 1에 불과한 북촌은 오래된 집과 길이 어우러진 동네다. 1968년 문을 연 중앙탕은 지금도 가끔씩 장작을 때 목욕탕 물을 끓인다. 1966년 문을 연 돈미약국엔 일흔이 넘은 할머니 약사가 여전히 약을 만든다. 최소아과의원 문을 열면 78세 할아버지 의사가 맞이한다.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김덕환 금박장이 물건을 만드는 '금박연', 1895년 9월 30일 국내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재동초등학교' 또한 북촌에 있다.

 

<북촌탐닉>(푸르메 간)은 이런 동네에 흠뻑 빠진 영화 칼럼니스트 옥선희씨가 10년째 북촌에 살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동네 주민만이 찾아낼 수 있는 골목과 동네 가게의 특징 등이 자세하다.

 

근현대사 고스란히 스며든 동네...한국 최초 외국인 선교사가 머물다

 

  
영화칼럼니스트 옥선희씨가 10년째 북촌에 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북촌탐닉>
ⓒ 푸르메
북촌

북촌은 청계천 또는 종로 윗동네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말한다. 지금은 율곡로 위 북쪽 마을을 대략 북촌이라 부른다. 왕궁 곁에 있어 역사가 소용돌이칠 때마다 북촌도 요동쳤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국에 들어온 최초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는 중국에서 넘어와 북촌 신도 집에 숨어 살면서 이 곳 우물물로 영세를 주었다. 김대건 신부 또한 이 곳에서 도피생활을 했다. 한국 교회사는 이 곳에서 시작된 셈이다.

 

조선 최초 신식무기 공장을 만들던 번사창이 이 곳에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곳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국무총리 공관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조선 중엽 왕자가 살았던 이 자리는 고종이 대원군 사위에게 하사한다. 이후 전 조흥은행장인 민규식이 산 뒤 경성전기주식회사에 매각됐다. 해방 이후엔 국회의장 공관이었다.

 

조선 제일 부자로 화신백화점을 만든 박흥식 집은 한국 최고 재벌들이 거쳐 갔다. 고 정주영 전 현대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한 때 이 집에 머물렀다.

 

북촌에서 사연 없는 집이 없겠으나 가장 부침이 심했던 곳은 안동별궁일 터다. 1881년 순종 혼례를 치르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1910년 내인들 거처로 쓰이다 이후 총독부 재산이 됐다. 이후 경성휘문소학교가 들어섰다가 일부 자리에 풍문여고가 지어졌다. 그렇게 궁이 허물어지는 동안 건물들은 하나씩 흩어졌다. 현광루와 경연당은 고양시 한양컨트리클럽으로 갔다 지금은 부여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옮겨갔다. 정화당은 메리츠화재 중앙연수원으로 정관루는 남이섬 동쪽 끝으로 이전됐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들도 있다. 옛 한국일보사 건너편엔 2004년 초까지 일본식 2층집이 가득했다. 1918년 일제가 조선식산은행을 세우면서 만든 직원 사택이었다. 이들 집들은 이 일대를 매입한 삼성생명이 2004년 봄 헐어버렸다.

 

52년된 화개이발관은 2007년 문을 닫고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 여행 중 그림 파는 아가씨에게 청혼...글쓴이가 만난 이방인들

 

  
저자가 사랑하는 북촌 풍경 가운데 하나.
ⓒ 푸르메
북촌

자동차가 다니기 쉽게 넓고 곧은 길이 대세인 요즘, 북촌길은 미로에 가깝다. 자동차는커녕, 두 사람이 지나기에도 빠듯한 길들이 수두룩하다. 꼬불꼬불 휘어진 길들은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하게 만들고, 언덕을 따라 이어진 길들은 그 너머를 기대하게 만든다.

 

북촌을 사랑하는 글쓴이는 게스트하우스를 꾸리며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열심이다. 그가 만난 외국인들 사연이 재밌다.

 

독일인 크라베는 중국 여행 중 그림 파는 아가씨에게 반해 청혼을 하고 함께 이곳에서 묵었다. 홍콩 노총각 브라이언은 커피숍 아가씨에게 반해 일년 새 한국을 세 번이나 찾았다. 세계 각국에 친구 또는 어머니라 부르는 홈스테이 주인을 둔 독일인 클라우스, 붙임성이 좋아 매번 회식비를 내게 만들던 일본인 사오리 이야기도 들려준다.

 

짝사랑에 마음 아파 하는 브라이언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고, 손님들 보내준 뒤 한참 울기도 한다는 글쓴이이기에 외국인들이 그리 마음을 열었을 듯싶다. 그 중 일본인 준코가 들려준 사연은 드라마 같다.

 

"첫사랑으로 만나 현재까지 사랑을 이어오고 이는 남자가 유부남인 데다, 생활 능력 없는 그는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거다. 마흔두 살인 준코는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가 되는 게 두렵고, 그래서 다른 연하남을 가끔 만나고 있지만 애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혹 알게 된다면 조용히 넘어갈 수 없을 거라고 했다."-92쪽

 

글쓴이가 들려주는 북촌 정보도 꽤 쏠쏠하다. '친절도 제로' '시끄럽다' '인기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주 솔직하게 평가하는 식당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입장료 100원 내면 되는 갤러리나 서울문화의밤 같은 행사 때 1만 원 자유이용권을 사면 일대 박물관을 밤늦도록 구경할 수 있다는 정보도 요긴하다.

 

문제점도 지적한다. 정부가 한옥 개조에 지원을 하다 보니 외지 사람들이 한옥을 사들여 주말 별장으로 쓰면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단다. 밤만 되면 을씨년스럽다고. 서울시가 북촌을 관광지로 만들어나가면서 사는 사람이 점점 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북촌을 관광지로 만들려는 생각을 버리고 주거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애정에서 비롯된 지적들이다.

 

10년 동안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북촌자랑을 했을 글쓴이의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책엔 가득하다.

 

역사가 깊은 동네기도 할 테고 운치 있는 집과 길이 많아서이기도 할 테다. 무엇보다 곱게 늙어가는 동네라는 느낌이 글쓴이를 매혹케 한 게 아닌가 싶다.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트럭에 수채화 그림을 내건 멋쟁이 야채장수 아저씨가 나타나 '야채 1천 원'을 외친다.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은 트럭 안을 기웃거리다 옥수수 한 덩이를 사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신다. 등 굽은 할머니가 가파른 계단을 느릿느릿 오르는 뒷모습이야말로 가장 북촌스러운 풍경이지 않나 한다."-34쪽